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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재 환 전 성주군 부군수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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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죽 선생시 번방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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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 최경창이 함경도 경성도호부 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북도평사로 발령을 받아 임지에 있는 동안 기녀 홍랑를 만나 두 사람은 사랑에 푹 빠져 있었다. 임기를 마친 최경창이 떠나게 되자 홍랑이 최경창을 배웅하기 위해 함관령 고개까지 갔으나 금계령 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어 사무치는 사모의 정을 뒤로하고 바로 길옆에 있는 묏버들을 꺾어 주며 슬프게 시를 한수 읊어 준 것이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그 유명한 '묏 버들가'다. 고죽이 그 묏버들가를 한문시로 번역한 것이 바로 번방곡이다.
묏버들가 - 홍랑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오니 님의 손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번방곡 - 최경창
折楊柳寄與千里人 爲我試向庭前種
절양유기여천리인 위아시향정전종
須知一夜新生葉 憔悴愁眉是妾身
수지일야신생엽 초췌수미시첩신
버들가지를 꺾어 천리 머나먼 님에게 부치오니
뜰앞에다 심어두고서 날인가도 여기소서
하룻밤 지나면 새잎 모름지기 돋아나리니
초췌한 얼굴 시름 쌓인 눈썹은 이내 몸인가 알아주소서
고죽이 병석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은 홍랑은 금계령을 무시하고 달려와 고죽의 병간호를 지극정성 수발하자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고죽의 파직 상소가 빗발치자 하는 수 없이 다시 떠나게 된다. 이때 고죽은 홍랑에게 이별의 시 두편을 지어 넘겨준다.
송별 - 고죽
고운 두 빰에 눈물 흘리며 봉성을 나서네
새벽 꾀꼬리가 이별이 서러워 그리 우는가
비단옷에 말 타고 강 건너 떠나갈 제
아득한 풀빛만이 혼자 전송하리
말없이 마주보며 그윽한 난을 보내오니
이제 가면 아득히 먼 곳 어느 날에 돌아오리
함관령 옛날의 노래를 다시는 부르지 마오
지금도 궂은비 내려 푸른 산길 어둡겠지
고죽은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홍랑은 고죽이 죽은 소식을 듣고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다율리 산자락 고죽의 묘앞에서 움막을 짓고 얼굴을 추하게 하고 9년간의 시묘살이를 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랑은 고죽이 남긴 시고를 정리하여 머리에 이고 7년간이나 피난살이 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최씨 문중에 200점의 고죽 유작을 전한 후 고죽의 묘앞에서 42세의 나이로 마지막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자 해주최씨 문중에서는 비록 기녀 홍랑이지만 고죽에게 지극정성 병간호와 고죽의 시고를 지켜온 거룩한 마음에 감동하여 홍랑을 받아들여 정성껏 장례를 치루고 경기도 파주시 해주최씨 선산 고죽의 합장묘 아래 함께 묘를 쓰고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나는 조선조 사대부 고죽선생과 함경도 홍원의 기녀 홍랑과의 구구 절절한 사랑의 스토리를 가슴에 새기면서 고죽선생이 남긴 유명한 시 번방곡을 화선지에 행초서체 작품과 함께 지면에 남겨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