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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곶감

김소정 기자 입력 2021.12.21 09:23 수정 2022.05.20 09:23

↑↑ 석 종 출
펫헤븐AEO 대표
ⓒ 성주신문


"하야버지! 원이한테 맛있는 고깔(곶감) 많이 주세요.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인간의 경우 영아와 유아기 일 때 두뇌의 80% 이상이 발달한다고 한다. 에릭슨(Erikson)은 독일 출생 미국인이며 발달심리학자이다.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을 8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중 영유아기 때의 신뢰 형성과 자율성은 전적으로 주 양육자와의 관계이고 부모와 돌보는 양육자에 대한 신뢰감부터 시작한다. 믿음이 생기면 독립심과 자기 존중감도 생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지와 격려를 받고 칭찬을 받으면 잠재적 확신에 차고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한다.

할머니는 늘 손자들을 돌보는 보모였다. 하루 종일 들에서 일을 해야 했던 부모들은 식사시간을 빼고는 자기 자식을 안아볼 여유가 없었다. 부모는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자기자식이 귀엽다는 표시조차 할 수 없었던 농경사회가 불과 반세기 남짓 전의 일이다. 지혜롭다 거나 슬기롭다 거나 하는 거창한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소양이나 범절을 배우고 갖추지 못한 세대들이었다. 그저 때가 되면 먹을거리나 챙기고 진자리나 갈아주는 것 정도가 양육의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다.

외할머니는 먹을 것이 있으면 어린 손녀에게 먹이려고 장롱 안에 숨겨두었다. 외할머니가 싸 들고 오는 까만 비닐봉지 안에는 나프탈렌 냄새가 나는 바나나와 귤이 있었다. 귤이라는 과일과 바나나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외할머니는 당신 몫을 챙겨두셨다가 올망졸망 어린 핏줄이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러 오셨다. 나프탈렌 냄새가 밴 귤을 먹고 자랐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제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외할머니 귤에서는 귤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요? 귤의 상큼한 향기 대신에 맡았던 나프탈렌 냄새가 외할머니의 사랑이었고 향기였다.

아주 옛날 산골 가난한 집에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배가 고파 자주 울었다. 아이의 부모는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설움을 온갖 꾸중으로 울음을 멎게 했다. 마침 그러한 관경을 지나가던 스님이 물끄러미 보다가 불현듯 아이한테 넙죽 절을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의 부모는 스님에게 왜 그러는지를 물었다. "이 아이는 장차 큰 인물이 되어 이 나라의 기둥이 될 인물이오" 하고는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아이의 부모는 그 아이를 공들여 키웠고 부모의 사랑과 믿음을 먹고 자란 아이는 큰 인물이 되었다.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다.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고 하찮게 보면 쓸모없다. 비록 말로 하는 추임이지만 사랑한다, 예쁘다, 착하다, 잘 될 것이다. 곱게 보고 사랑으로 보살피면 참하고 귀하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일본의 어느 교수가 사람이 마시는 물(水)로 실험을 했다. 같은 조건에서 한쪽에는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 주었고 한쪽에는 바보 같은 물이라고만 했다. 두 가지의 물을 같은 조건 아래서 냉동을 했다. 얼음의 결정체를 현미경으로 확인했을 때 엄청난 차이를 발견했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감정을 받은 물은 완벽한 물의 육각 결정체를 이루었으나 다른 쪽은 육각은커녕 결정체를 이루지도 못했다. 긍정과 감사의 추임새가 물(水)에게도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인간에게는 어떻겠는가.

지금 내 곁에 있는 어린 손자에게 촉촉한 사랑의 말로 속삭여 준다. 초봄 아지랑이 오르게 하는 햇살처럼 부드럽고 포근하며 넉넉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로운 말을 추임새로 쓸 일이다. 할아버지라고 발음하지 못하고 하야버지 라고 하는 귀여운 손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귀엽다, 잘 한다, 사랑한다, 만으로 충분하다. 손자 주먹만 한 대봉 곶감이 산들산들 가을바람에 속살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처럼 말랑말랑 해졌다. 손자가 좋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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