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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호랑이의 해

김소정 기자 입력 2022.02.22 09:10 수정 2022.05.20 09:10

↑↑ 최 필 동
수 필 가
ⓒ 성주신문

수필가 최 필 동

‘산중의 왕’이라는 호랑이의 해 임인년을 맞았다. 호랑이, 참 무서운 짐승이기도 하고 신령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병든 부모 봉양의 정성이 하늘에 닿으면 선약(仙藥)을 현몽하기도 하는, 영물로 인지되기도 했던 동물이 호랑이다. 또 집안에 호랑이 그림만 둬도 영검한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우리나라를 호담국(虎談國)이라 할 만큼 호랑이 이야기나 속담이 널려 있다고 최남선이 말했다 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말했던 ‘호식기-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도 있었고 호환(虎患)도 있어 공포의 동물이었다. 또 어린아이가 자꾸 울면 ‘호환마마’가 온다고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마마는 옛날 높은 벼슬아치의 정처보다 비첩(婢妾)들을 더 높여 부르는 조롱인데, 호랑이만큼 무섭다는 천연두를 마마라 비유하여 호환마마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요인지 동요인지 모를 ‘금강산 호랑이 어르르릉···’, 혹은 ‘가야산 호랑이···’이라 했으며, 서울에 오니 ‘인왕산 호랑이···’로 불렸다. 역시 호랑이는 외경의 대상임에 분명한 모양새다.

그런가 하면 호환의 폐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조선 태종 때는 호랑이 잡는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전문 군사를 양성하여 호랑이 잡기에 나섰다는 얘기도, 어떤 기록에서 본 일도 있다.

20세기 초 조선 포수가 잡은 호랑이 등에 개선장군이나 된 듯 호기롭게 올라탄 사진도 봤으며, 어른들과 함께 아이 업은 부녀자들도 짐짓 놀라는 시선으로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또 1917년 함경북도 신창에서 일본인 야마모토가 호랑이 사냥에 참여했던 포수들이 잡은 2마리 호랑이와 함께 찍은 사진(기념)도 보았다.

호랑이는 원래 한자 ‘호랑(虎狼)’으로 ‘범과 이리(狼)’ 두 동물을 함께 이르던 말이었는데, ‘랑’에 접미사 ‘이’를 붙여 호랑이 혹은 호랭이가 됐다.

우리나라 고유종 백두산 호랑이는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수컷 한 마리를 끝으로 이 강산에는 호랑이가 사라졌다 한다. 고려 말 문익점이 가져 온 목화씨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면포(綿布) 수요가 늘면서 빈 땅들이 밭으로 변하고, 야생동물도 줄어들어 약육강식의 호랑이들이 심산유곡으로 밀려나는, 생태환경의 변화에 따라 서식지도 변해갔다는 것이다.

임인년도 어느덧 한 달이지나 민족의 대명절 설도 지나갔다. 내 나이 산수(傘壽)도 지나고 보니 뜻 없이 가버린 무상세월이 허허로움을 지나 한없이 허허롭다. 게다가 걸어 온 발자국을 돌아보니 황량한 광야일 뿐이니 더욱 그러하며, 참 무력한 황구(黃口)의 삶이었다. 얼마일진 모르지만 남은 여정에도 ‘별빛’은 없을 터이니······.

내 생애 일곱 번인가 호랑이해를 맞고 지났지만 유독 금년에는 호랑이에 관한 특별한 화두가 하나 있다. 어머니가 세수(歲首) 일흔을 넘으며 무릎 관절통을 심하게 앓으셨다. 어머니 지인 한 분이 자기 경험담을 얘기하며 조언을 했다. 호랑이 뼈와 모과(木果)를 정제해 만든 ‘호골모과주’였다. 당시(1980년 경) 약값이 한 병에 10만 원이었다. 그때 지하철 차비가 200원일 때이니 대강 짐작만 해도 감은 온다.

당시 그 거금(?)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우리 3형제가 윤번으로 사서 봉양을 했다. 이른바 의료인들이 말하는 ‘효과 없는 약도 있다고 하여 먹으면 효과가 나타난다’는 “플라세보(Placebo) 효과”인지, 통증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며 보행도 좀 자유로웠다고 하셨다. 물론 어머니가 자식들 정성으로 나았다고 하는, 깊은 배려심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전인수식의 좀 진부한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약명이 ‘목과주’여서 쓰기는 ‘목(木)’으로 쓰고 읽을 때는 한글표기인 ‘모’로 쓰지 않고 ‘목’으로 썼으니, 그 신뢰가 좀 저어(低語)되기도 하는, 고지식함도 있었다. 어쨌거나 어머니가 효험을 봤다고 했으니 역시 플라세보 효과가 아닌가 하는, 당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후 10여 년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먹고사느라 평소엔 그나마도 해 드리지 못 하다가 그 약으로 큰 효성(?)을 한 것 같아, 이 호랑이해를 맞으니 그 호골모과주가 떠올라 적어본 것이다. 호랑이의 해에 호랑이의 한없는 영검을 받아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빌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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