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 독자마당

조선왕릉 답사(3)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2.07.05 09:39 수정 2022.07.05 09:39

↑↑ 여 환 주
전 재경성주중고 동문회장
ⓒ 성주신문


(사)한국전통조경학회(회장 최종희 교수)주관 조선왕릉 3차답사로(2차는 사정상 불참) 융·건릉/헌·인릉/선·정릉을 다녀왔다.(2022.6.4) 이날 먼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융릉(隆陵)·건릉(健陵)을 찾았다.

융릉은 후일 장조로 추존된 비운의 세자인 사도세자와 그의 비인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의 능이고, 건릉은 그의 아들인 정조와 그의 비 효의왕후의 능이다. 두 능 모두 현재의 자리로 천장하신 것이며 영월의 장릉을 제외하고 세종의 영릉 다음으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왕릉지이다.

당시 능지는 한양 도성에서 10리 밖에서 100리 이내에 조성했는데, 화성은 정조가 한양 도성에서 100리가 넘는다는 신하들의 의견에 당시 성인 장정의 1보로 능지 거리를 측정할 때 키 큰 장정들만 모아 1보의 크기를 늘리는 방식으로 맞서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천장지로 택한 곳이다.

융릉은 조선 후기의 능제 중 화려하고 정성을 들인 능으로써 왕릉에서는 보기 드문 원형 형태의 방지인 곤신지가 있는데 여의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대부분의 왕릉은 입구(홍살문)에서 능침 공간이 바로 보이지 않게 정자각을 세웠으나 융릉은 정자각 방향을 틀어 능침에서 앞의 공간을 확 트이게, 수목 식재 또한 일정 거리를 띄어서 심게 하여 정조임금이 아버지의 답답한 한을 풀어주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러면서 정조임금 본인은 아버지의 능 밑에 묻어 달라고 하여 처음에는 융릉 아래쪽에 묻혀 있다가 20년 후에 지금의 건릉 위치로 옮겼다고 하니 정조대왕의 효심을 엿보게 한다.
 재실 일원에는 향나무와 개비자나무 등의 고목이 있다. 융·건릉 일원에는 소나무 숲이 오랜 역사와 함께 깊고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다음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헌·인릉을 찾았다.

헌릉(獻陵)은 조선의 기틀을 잡은 조선 제3대 태종 임금과 그의 비 원경왕후의 능이다. 헌릉은 합장릉이 아니고 쌍릉의 형식으로 조성 되었는데 난간석과 병풍석등이 조선초기라 고려 양식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헌릉은 국정원 건물 옆에 있어서 그런지 입구부터 조선의 기틀을 잡은 태종의 그 위엄이 없어져 보이며 홍살문 바로 앞에 개인의 농작물 재배로 매우 궁색하게 보여 문화재청에서 이부분은 보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릉(仁陵)은 조선 23대 순조와 그의 비 순원왕후의 능이다. 인릉은 합장능으로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으로만 둘러쳐져 있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서 1790년 창경궁 집복현에서 태어나 1800년 정월에 왕세자에 책봉되고 이 해 6월 정조가 돌아가시자 11살의 어린 나이에 임금님이 되지만 대왕대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쳐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조선시대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문예부흥의 불꽃이 사그라져 간 안타까운 시대라고 하겠다.

이곳의 오리나무 숲은 서울시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서 습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오늘 마지막으로 답사한 선·정릉(宣.靖陵)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선릉)이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으로 있고 중종의 능(정릉)이 단릉으로 모셔져 있는 곳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해 있어 도심 속의 숲을 이루고 있어 이 일대 강남구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장소로써 재실 옆에는 500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있으며 정릉 옆의 숲은 사색을 즐기기에 좋다.

도심 속에서 이렇듯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훌륭한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조선왕릉 중 선·정릉만의 자랑이다.


저작권자 성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