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 독자마당

故 정재훈 중위를 기리며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3.05.23 09:29 수정 2023.05.23 09:29

↑↑ 최 필 동 수필가
ⓒ 성주신문

 

지난 1월 한 일간지는 '부활하는 미(美) 영웅, 잊히는 한(韓) 영웅'이라는 키워드 기사를 실었다. 미국 정부가 군인에게 주는 최고 무공훈장인 '메달 오브 아너'의 얘기가 요지(要旨)였다.

 
미국이 1863년 첫 수훈자가 나온 이래 지금까지 3500여 명이 명단에 오르고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대통령이 직접 훈장을 수여한다는 거였다. 이에 반해 우리는 '잊혀지고만 있다'를 지적한 것이다. 또한 미국의 시상식에서는 사병도, 장군도 구분 없이 일괄 거수경례를 한다는 것도 더 보탰다.

우리도 살신성인의 군인정신을 실천한 영웅이 여럿 있음을 국민들 가슴에 새기고 있다. 특히 베트남 파병 때 훈련 중 한 병사가 안전핀을 뽑은 채 놓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순직한 강재구 소령, 역시 베트남 참전 동굴 수색 중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을 안고 전사하여 다른 병사를 구한 이인호 소령, 백사장 고공 상공에서 강하 훈련 중 기능 고장을 일으킨 병사의 낙하산을 펴주고 본인은 추락해 순직한 이원등 상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직인들 고결하지 않을까만 강재구 소령 순직은 국민 가슴을 저민 사건이었으니 아직도 뚜렷이 남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강 소령의 일화는 1970년대 '아! 중대장님!'이란 제목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지금도 '재구 의식(儀式)'을 거행하고 '재구행진가'도 있다 한다.

여기까진 당연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유감스러움은 있다. '영웅'이라는 고결한 어휘에 등가까지는 매길 수는 없다하더라도 그 기사 다음에 나의 외우(畏友)인 정영(鄭永)의 맞아들 정재훈(鄭在勳) 중위(추존)도 실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다. 어딜 보나 그럴 만한 충분한 추모지정이 있는 사안인데 말이다.

조금은, 아니 많이 아쉬웠다. 내 친구 아들이라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좀 박정했다고 하면 무례가 될 말일까?

정영의 아들 정재훈이 육군중앙군사학교(ROTC) 수료, 육군 소위로 임관 소대장으로 복무할 때였다. 강원도 고성 북청강에서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훈련 중일 때, 자기 소대원도 아닌 도강하던 두 병사가 강 중심부의 급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갑자기 닥친 위기에 중대원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때, 정재훈 소위가 바로 뛰어들어 두 병사를 구하고 정 소위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참사를 당하고 말았다.

아! 살신성인의 거룩하고도 위대함을 내 '잡글쟁이' 묵필로는 다 표할 수 없어, 시인 유안진의 시구로 대신할까 한다. "그대 꽃 같은 나이 앞에/ (···) 살아있음이 미안스럽고/ 살아 주절거려 온 언어가 송구스럽고/ 해마다 현충일에 늦잠 잔 것도 용서받고 싶다"고 쓴, 가슴 찌르는 시구를 표절(?)했다는 말이다. 그런 나도 역시 용서받고 싶다.

내 처음 친구 정영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을 때였다. 그날(1990.3.16) 청천벽력의 비보를 듣고 부인과 함께 부대로 달려갈 때의 그 황망함을 가눌 길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도, 나오지도 않았으며 터지는 가슴이 목구멍을 옥죄고만 있었다고 숙연히 회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밝은 얼굴로 돌아옴에 나도 동조하고 말았다. 위로의 한 표현이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언급도 했지만, 먼저 간 자식 묻을 때 한 말이라곤 믿기 어려운 가슴 저민 심회라 아직도 내겐 남아 있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사단장과 온 부대원들의 통곡과 비통해함에 위로는 받았지만 이겨내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특히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을 할 땐 정 중위 아버지가 한 말은 '꼭꼭 묻어 놓고···'를 해놓고 보니 그나마도 텅 비어버린 가슴이 그 만 분의 일이라도 채워지기는 했다며,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했다. 겉으로는 '꼭꼭 묻어놓고···'를 토해냈을 것이겠지만, 그 속내의 휘몰아쳤을 폭풍우는 어찌 이겨냈을까를 생각하니 나도 울컥해지며 순간적 격함이 나를 요동치게도 했다.

상상만으로도 아버지로서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였을 것임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았다. 거룩하고 고결한 정재훈 중위의 희생정신을 그 무엇으로도, 그 어디에도 견줄 수나 있으리오만, 그러나 내 가슴 한구석은 "오호! 정재훈 중위가···!"라는 비통함으로 에는 가슴 가눌 길이 없다. 아! 사병 2명을 구하고 순직한 공적이 겨우 '보국훈장 광복장'이라 함에 한없이 허허로움만 밀려왔다. 게다가 '광복장' 하나가 숭고한 희생과 치환(置換)이 됨에 몹시 가슴이 아렸다. 다만, 이 나라 독립군의 거함(巨艦) 안중근 장군의 '위태로운 것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見危授命-견위수명)'를 떠올리는 이 소인배의 미욱함을, 고인이여 용서하소서!

1주기 기일부터 친구는 부인과 함께 매년 열리는 추모 행사 참여는 물론 모교 교정에 동상 건립, 사단 신병교육대에 그 이름을 딴 '재훈기념관'과 '재훈체육관'의 설립, 충북 괴산의 학훈단의 동상 건립, 강릉시 죽헌동의 '율곡과 신사임당의 인성 교육관'은 정재훈 중위의 "숭고한 살신성인과 부하 사랑의 전범(典範)"의 결정판이라고 다시 언급해 보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잊혀져 가는' 게 두려워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라도 '거룩한 정재훈 중위'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절친 정영! 이 졸문(拙文)으로나마 다시 한 번 정재훈 중위의 추모지정을 되새겨 본다. 더욱이 부인과 함께 친구의 그 독실한 불심으로 정재훈 중위가 영생불멸의 영면으로 승화되길 기원하며 이만 쓰려한다.



저작권자 성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