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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포커스초대석

"맨손으로 시작해 성공한 영화제작자가 된 것은 기적입니다" / (주)동아수출공사 이우석 회장

이지선 기자 입력 2025.04.15 09:10 수정 2025.04.15 09:10

강제징용 아버지 따라 3세 일본행
광복 맞아 한국에, 파란만장한 삶

동아수출공사 설립 K-문화 기반
'깊고 푸른 밤'이 가장 기억 남아
한국 영화 최초 미국 올로케이션

↑↑ 이 우 석 △초전면 봉정리 출생 △1935년생 △아내와 2남2녀(손자2, 외손자4)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現재단법인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이사, 現대한노인회 고문, 現세계통합무술연맹 명예총재 △국민훈장 보관문화훈장(2001), 국민훈장 동백장(2011), 국무총리표창(2020) △제3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작품상(1985) 등 국내외 영화상 △ 회고록 '영화에 살다'(2022)외 다수
ⓒ 성주신문
60여년간 영화 제작 외길을 걸으며 K-문화의 초석을 다진 입지전적인 인물, 바로 이우석 회장이다. 90세를 넘긴 지금, 그는 시대를 뛰어넘어 K-문화의 글로벌화를 여전히 자랑스럽게 여긴다. 일평생을 영화 제작에 바친 그의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여정을 함께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 본인 및 동아수출공사 소개
 

동아수출공사는 1967년에 설립한 6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1세대이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영화사라고 할 수 있다.
 

저 역시 올해 나이가 91세로 현역 최고령 영화 제작자라고 말하고 싶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탄광으로 징용 갔던 아버지를 따라 3살 때 일본 규슈로 갔다. 일본에서 살다 11살에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이 곳 저곳을 떠돌다 결국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 어릴 적 고향인 성주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한 겨울에 아버님 손을 잡고 한개마을에 계신 백부님께 세배 드리러 가던 길이 생각난다.
 

하얗게 서리 내린 길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으며 방과 후 집으로 귀가하면 세종왕자태실이 있는 선석산 위로 흰구름 떠 있던 광경에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 영화산업에 뛰어든 계기
 

6.25전쟁 후 덕신공사라는 무역회사에서 일하며 외국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일까지 맡게 됐다.
 

부산 동아극장에 입회원으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와 인연이 닿았고 배운 것은 없어도 문화사업으로 이름 석 자는 남겨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맨손으로 시작해 후회없이 영화를 만들었으니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7080년대 영화 중흥기를 이끌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1985년작 '깊고 푸른 밤'을 꼽고 싶다. 그 때만 해도 해외 로케이션 촬영은 언감생신 꿈도 못 꿨는데 한국 영화발전을 위해 최초로 미국 올로케이션을 진행했다.
 

최인호 원작으로 배창호 감독에 장미희, 안성기 씨가 주연을 맡았고 이후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대종상 같은 많은 상을 수상하는 등 예술성과 흥행 양쪽에서 모두 성공한 히트친 작품이 됐다.
 

 

▣ 근현대사의 커다란 전환 속에서 흥망성쇠를 함께 해 온 영화산업인 만큼 성공요인과 함께 현재 시스템에서 보완해야할 점을 꼽는다면?
 

우리 K-시네마, K-드라마가 전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은 참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영화산업 역시 인재들이 많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고 영화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 실력 있는 인재들이 마음껏 작품을 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영화 제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아낌없이 지원한 것처럼 이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유명 감독이든 신인 감독이든 연출에 간섭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소품 하나 사는 비용도 절대 깎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감독들이 동아수출공사하고 일하고 싶어한 부분이 가장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 한국영화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가운데 한국영화의 특징과 더불어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한다면?
 

동아수출공사는 '바람불어 좋은 날'과 '겨울 나그네', '칠수와 만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처럼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이 많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 모두 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최근 한국영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은 한국인의 저력이 있기에 가능했으며 한국인의 혼과 문화가 한류를 만들었다.
 

 

▣ 재경성주출향인들과의 교류는 어떻게 하시는지?
 

성주는 제 고향인 동시에 성산이씨의 관향이라 불가분의 관계이다.
 

재경성주군향우회, 초전면 동향 선배님들과 지금까지도 자주 만나고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지내왔다.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골프도 같이 치면서 가깝게 교류하고 있으며 20대 때에는 고향의 큰 어르신이신 심산 김창숙 선생님을 매주 찾아뵈며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타지에서 오랜기간 생활하면서 애향심을 느끼거나 고향이 생각날 때가 있다면?

해마다 짬을 내어 서너 차례씩 성주를 다녀온다. 올 봄에도 고향에 가려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이밖에도 가끔씩 영화인과 지인들을 모시고 성주 역사문화 탐방여행을 하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랜다.
 

 

▣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은?
 

제 평생 '정직'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왔다. '정직'이 최고의 자산이며'정직'이 최고의 '빽'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 여가시간 활용법이나 취미는?
 

나이가 들어보니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 요즘 집 가까이에 있는 양재천을 매일 걷는다.
 

친구나 영화계 동료 후배들을 만나 추억을 곱씹으며 특히, 원로 영화인들과 두 달에 한 번씩 모였는데 이젠 월 1회로 더 자주 얼굴을 보고 있다.
 

 

▣ 1960년대 황금기 이후 2000년대 찬란한 르네상스를 맞는 등 근래엔 아카데미 시상식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사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한국 영화시장에서 함께 걸어온 동료 및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
 

'기생충' '오징어 게임' 같은 명작을 탄생시킨 후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일본을 뛰어넘는 것 하나가 목표였던 만큼 우리 영화가 이렇게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무한히 자랑스럽다.
 

한국영화가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들께서 영화를 많이 사랑해주시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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