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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필 동 수필가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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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일간지가 '사랑한 우리말'을 기획하여 연재로 싣고 있다.
'사랑한 우리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겐 '우리 구멍'이다. 6·25 전후일 때 하늘만 쳐다 보는 이른바 천수답이 있었다. 그런 논에 때맞춰 비가 내려 모를 심어놨는데 어디 흘러간 흔적도 없이 피 같은 물이 빠져버리면 그 주범을 잡으러 논두렁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주범은 지렁이와 땅강아지(논두룸망아지)인데 그놈들은 먹이를 찾느라 논두렁을 헤집고 다니니 절로 구멍이 생기고 그게 '우리 구멍'이며 거기로 물이 새는 것이었다.
'반보기', 어딘지 모르게 훈훈한 정감이 흐르는 순우리말이다. 산업화사회 이전 농업사회일 때 만나고 싶은 일가친척을 반쯤 되는 곳까지 와서 만나고 돌아가는 행위를 반보기라 했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부인네들, 특히 새 며느리의 정례적 첫 근친(覲親·친정에 가는 일)을 가기 전에 모녀가 만났던 관습도 있었다 한다.
'볼가심'은 아주 적은 음식으로 겨우 시장기만 면한다는 말인데, 훨씬 이전 모든 것이 부족할 때 먹거리에 관한 얘기이니 우선 애연함이 먼저 떠오른다. 대표적 가난의 대명사인 보릿고개도 있지만 이보다 훨씬 강한 애상이다. 생기는 대로 낳고 기르던 그 시절 놀다 돌아온 애들이 배고프다 하면 엄마는, '야야, 새앙쥐(생쥐) 볼가실(볼가심이 표준어) 것도 없다'가 다반사였다.
한 몸통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이 '가르다'인데 여기서 변한 말이 '겨레'이다. 이른바 오늘을 일러 글로벌시대라 해도, 그래도 '내 겨레 내 동포'는 고전적 의미의 순정한 우리말이다.
'길쓸별'은 별이 지구 인력에 의하여 운동하는 발광체를 말함인데 유성 또는 혜성(彗星)이라고 한다. 혜성의 '혜'자는 그 빛이 길을 쓰는 빗자루 모양을 닮았다 하여 '길쓸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고드름'은 물방울이 떨어지며 어는 얼음인데 그 어원은, '곧 얼음'이 언다는 말이 변해서 된 말이다. '거둥'은 무슨 일에 나서서 행동하는 태도를 말함인데 거동(擧動)의 원말이다. '담살이'는 머슴살이의 방언인데, 지금은 그 말도 안 쓰지만 농촌에서 '머슴'이 대세일 때 어른들은 머슴이라는 비칭(卑稱)을 피하느라 담살이라 쓰는 것을 봤다. '도리기'는 여러 사람이 추렴한 쌀(돈)로 음식을 마련하여 함께 나눠 먹는 일인데, 오래 전 겨울 농한기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도리기'를 '디리'라고 하며 밤마다 하던 때도 있었다.
'동냥글'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조금씩 얻어 들어 배우거나 익히는 글공부를 말함이다. 사농공상의 계층이 엄격할 때 글도 아무나 배울 수 없던 시대도 있었다. 비슷한 말 귀동냥도 있다. 동냥이란 말은 원래 수도하는 승려가 곡식을 얻으려고 이집 저집 돌아다니는 일을 말함인데 동령(動鈴) 또는 동량(洞糧)이 변한 말이라 한다.
'미르'는 순우리말의 용(龍)을 말한다. '미'는 물의 의미가 들어 있어 미나리, 미역, 미꾸라지가 모두 물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또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우리말인데 여기도 은하水의 '水'가 있어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처음 언급한 '우리 구멍' 다음에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 있는 우리말은 '허든허든'이다. 그때 호미 한 자루 사러 5일장에 20리 길을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뎃가게(노점)에서 삶은 고구마 파는 것을 봤다. 종일 쫄쫄 굶었으니 나도 모르게 덥석 손이 가 세 개를 사서 하나는 우선 내가 먹고 둘은 어머니께 드리려 갖고 왔다.
동네 앞 시내만 건너면 우리 남새밭이 있다. 그날도 거기서 김을 매는 어머니를 멀리서 보니 허리를 구부려 김을 매다 말고 내가 오는 쪽을 이마에 손을 대고 한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또 엎드렸다 바로 일어나 다시 두리번거림도 없이 한 곳만을 뚫어져라 보는 것이었다. 이걸 본 나는 걸음이 더 빨라져 금방 어머니 곁으로 갔다.
내가 본 장 보따리에서 고구마를 내어 드렸더니 다 드시곤, "야야, 네 형 둘의 생일이 이 달이지 않니? 부인네들은 출산한 달 돌이 되면 배고픔도 자주 오고 허든허든도 가장 먼저 온단다. 야! 네가 사온 고구마 먹고 나니 허든허든도 금방 가셨다."고 하시며 적이 드러내진 않아도 고마운 마음을 푸근한 미소로 대신하는 듯 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상만이 오롯이 갖는 미소인 것만은 분명했다.
평소 어머니는 시장한 것과 출산으로 인한 허든허든은 다르다고 자주 귀띔을 했던 일이 있어 출산의 어려움을 넌지시 헤아려 보라는 것이라고 짐작은 했는데, 그날 그 고구마 두 개가 그처럼 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
농업사회일 때 우리 어머니들은 아이 낳아 기르고 길쌈도 어머니 몫이었다. 게다가 농사일도 틈틈이 거들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김을 매느라 해동갑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 어머니도 예외 없이 7남매를 낳았으니 일 년 열두 달 출산 안한 달이 없을 정도였다. 여자는 이른바 망단(望斷)이 오기까지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성스러운 숙명이었으며, 그 허든허든이 오늘의 이 풍요의 시대를 맞는 데에 크게 밑거름이 됐음을 생각하니 좀 애연해지기도 한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