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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잃어버린 것을 위하여

김소정 기자 입력 2021.10.12 10:11 수정 2022.05.20 10:11

↑↑ 배 연
화가·수필가
ⓒ 성주신문


올해는 봄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지만 어제만 해도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우산을 쓰고 출근을 해야 했다.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거의 매일 운동 겸해서 20여분을 걸어서 다니는데 비가 오는 날은 조금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바지가 다 젖기도 하고 어떨 때는 조심성 없는 운전자로 인해서 물벼락을 맞기도 한다. 오늘은 우산과 건망증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들이 할 때는 주로 전철을 많이 이용을 하는 편이고 습관이 되어서인지 몰라도 다른 교통편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은 조금 긴장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우산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철에 두고 내린 우산 숫자를 다 외울 수는 없지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웬만한 우산가게 하나는 차릴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싶다.

예전에는 책을 읽다가 또는 졸다가 목적지에서 급히 내리다 우산을 두고 내리는 경우가 많았고 요즘은 부끄럽게도 휴대폰에 빠져 있다가 잃어버릴 때가 많다.

평소에 아끼던 우산을 두고 내렸을 때는 너무 아까워서 전철역으로 전화를 해서 종점에 가서 찾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 포기하거나 분실신고를 해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비올 때 마다 들고 다니다보면 정이 들어 한동안은 눈에 아른거려서 다시는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하고 바짝 정신을 집중하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다시 습관적으로 반복이 되니 이 건망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동안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것이 어디 우산뿐이겠는가,

몇 년 전에는 가방을 선반에 두고 내린 적이 있었는데 아예 포기를 하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지하철 분실물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찾은 적이 있었다.

담당직원이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를 발견해서 연락이 된 것이다.

또 한 번은 출근하면서 지하철 의자가 너무 차가워서 가방에 있는 책을 깔고 앉았다가 그냥 내리고서는 저녁에 퇴근하면서야 알게 되었다.

국제전 미술 팸플릿으로 책은 여분이 있어서 괜찮은데 문제는 그 책속에 중요한 서류와 작업준비를 위한 스케치도 여러 장 있고 우리 같은 환쟁이에게는 꽤나 귀한 자료들이 들어있어서 우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나에게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이건 꼭 찾아야겠다고 지하철 분실물센터에 찾아가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도 해보았지만 결국 찾지를 못하였다. 아마 짐작으로는 청소 하시는 분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고 곧장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보물 같은 물건이겠지만 그분들한테는 그저 치워야할 대상일 뿐이었으리라. 거기에 명작이 탄생할 귀한 자료(?)가 잠자고 있었는데 아쉽고도 아쉬울 뿐이로다.

하도 우산을 잘 잃어버리다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름대로 긴장을 하고 신경을 쓰게 되면서 근래 들어 지하철에서는 웬만큼 우산을 잘 챙기는 편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병이 생겼다.

지금 사무실이 있는 건물 1층과 2층은 종로에서도 유명한 보석상가로서 유동인구가 엄청 많은 곳이다. 건물에 도착하면 2층에 있는 화장실을 들릴 때가 많은데 여기에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신주 모시듯 챙겨 와서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리게 마련이라 볼일을 마치고는 그냥 3층 사무실로 올라갔다가 아차하고 내려와 보면 우산은 벌써 사라져버린 뒤였던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을 그러고 보니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것 보다 더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 같은 묘한 배신감 같은 것이 아닐까싶다.
다른데서는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한참 후에 다시 가보면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이 건물은 어떻게 된 일인지 그 흔한 우산이 금방 사라져 버리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에 대해서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옮겨본다.

건망증: 우리 집 주소를 잊어먹는다.
치매: 우리 집이 어딘지 모른다.
건망증: 아내 생일을 모른다.
치매: 아내 얼굴을 모른다.
건망증: 볼일보고 지퍼를 안올린다.
치매: 지퍼를 안올리고 볼일을 본다.
건망증: 심해질수록 걱정된다.
치매: 심해질수록 아무 걱정이 없다.

위의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내가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것은 다행히도 건망증에 속하는 것 같다. 망각이란 어떤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보고들은 모든 것을 기억해 둘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지나면 다소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리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고 반면에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일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잊어버리고 기쁘고 아름다운 추억들은 오래도록 기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유난히 높고 푸른 가을하늘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 무렵이면 왠지 가슴 한켠이 휑하니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남자의 계절이라서 가을을 타는 것인지 어느 노래가사처럼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정처 없이 헤매 도는 나그네가 되어서일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잃어버린 것과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건 어떤 것인지 한번 생각 해봐야겠다. 모든 잃어버린 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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