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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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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최 필 동
직선제 개헌 후 여덟 번째,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가 다가온다. 이번 대선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치열한 양상이니 그 결과를 두고 깨끗한 승복이 될까 걱정이다. 최악의 경우 2% 내외로 승부가 갈릴 때를 예상하면 그게 우려스럽다는 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후보 경선부터 선대본 구성까지의 논란은 그만두고라도 본격적 선거운동이 시작되며 후보 간 리스크 잡기에만 날이 샐 지경이다. ‘7시간 녹취’가나오는가 했더니 말하기도 민망한 ‘형수 욕설’이 온 선거판을 흐린다. 여기저기 가처분 신청이 쏟아지고 고소고발 봇물도 터졌다. 네거티브와 마타도어가 판치는 이런 선거는 처음이다. 국민들은 참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현명한 국민의 판단이 중요하다.
이번 선거를 보노라니 지난 2대 국회의원 선거가 떠오른다. 처음 선거권이 있었던 자유당 때였다. 사실은 한 살 모자랐지만 정권의 하수인 면사무소가 유권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자유당이 저지른 인과응보의 비참한 말로를 부른 시발이었다.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미성년자들에겐 선거가 재미있는 ‘마당놀이’였다. 문맹자가 다수 있었을 때이니 후보 기호는 숫자가 아닌 ‘막대기’였다. 선거운동은 재력이 없으면 마차를 쓰고(내 기억?), 좀 있으면 대여한 찝차에 확성기를 장착하고 온 지역을 휩쓸고 순회하며, “작대기는 O개, 누구누구를 국회로 보냅시다!”였다. 아이들은 야아! 하며 처음 본 찝차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누구누구를 구캐구딩이(그땐 시궁창을 그렇게 불렀다)로 빠주읍시다’라고 희화화(戱畵化)하며 뛰어다녔다.
그때 당선자에게는 ‘기분 좋다 배상연(반세기가 지났지만 기억은 생생)’, 차점자에게는 ‘억울하다 정진용’, ‘말 잘한다 이영균’이었으며, ‘뚱뚱하다 최성장’은 우리 종친이었다. 또 배상연은 바둑 유단자였으므로 이승만 대통령의 바둑 개인교사였다고 그 훨씬 뒤에 듣기도 했다.
3대 때였다. 한 후보는 애 어른 할 것 없이 만나기만 하면 절을 했다. 그때 들판이거나 논 드럼이거나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절을 했으니 당연히 별명이 붙었다. 바로 ‘절 잘하는 도진희(都晉熙)’였다. 그땐 나도 철이 들었으니 그 후보의 온화한 미소가 지금도 떠나지 않는다. 더욱이나 그의 선거 사무장이 나의 인척이었으니, 그의 당선은 우리 집에도 경사였다.
‘절 잘하는 도진희’를 기억하니 지금의 ‘절’의 행태가 떠오른다. 절도 평배가 있는가 하면 ‘큰절’도 있다. 연장자나 원로를 만나 절하고 기본 예의를 차리는 거야 누가 탓할까만 ‘표’ 앞에 주눅이 드는 것처럼 겸양(謙讓)을 시도 때도 없이 펼치고 큰절 하는 것 그게 자연스럽지도 않고 좀 눈에 거슬린다. 값싼 눈물은 왜 그리 많으며, 이게 바로 감성 호소라는 건가? ‘권위주의’는 사라져도 ‘권위’는 있어야 하고, 위용(威容)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 후보는 이른바 ‘리스크’가 많아 그것이 회자될 때마다 수도 없이 사과하고 절하고 성찰한다고, 깍듯이 머리 숙이는 것이 낯설다. 심한 비판자는 ‘벨도 없느냐’라 비꼰다. 아무리 ‘표’ 앞이지만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큰 포부만큼 신뢰가 가지 않으며, 특히 그는 ‘(선거)지면 감옥 갈 것 같다’는 고단수의 ‘표’ 회유책도 내놓는, 자타공인 달변가다. 속 빈 강정이듯 실속 없는 달변보다는 숙고형(熟考型) 눌변(訥辯)이 더 무게감과 친화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 후보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들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눈앞의 절체절명의 지지 호소보다는 먼 ‘국가 장래’를 위한 비전을 듣고 싶으며, 당선되더라도 “권좌가 곧 ‘권력’이라는 속성”을 꼭 배격해 주길 제언한다.
제일 처음 지자체 면의원 선거 때였다. 그땐 법적 성인(21세) 이상이면 선거권은 있었으나 투표권 쪽지 발행은 없었다. 다만 양심(나이)만 믿고 모두 투표장을 가는, ‘높은 시민 의식(?)’도 있었다. 당시 내 가형(家兄)이 출마했으니 집안 한 누님이 첫 번 투표하고 두 번째는 머리 스타일을 바꿔서 투표했다. 한참 있다가 세 번째 갔더니 참관인이, ‘아따! 너는 인자 고마 오너라···’ 했던 일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코미디이다.
지금 선거 운동 중에도 심하게 말하면 그야말로 아수라판이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깨끗한 승복이 ‘민주주의의 꽃’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국가의 미래는 물론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의 축제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꼰대’의 말도 이만 접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