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상 연 前 대구동호초 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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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88 서울올림픽’ 이 열리던 해 봄에 나는 흰색 픽업 자동차를 한 대 샀다. 픽업 자동차는 나한테는 소중한 출퇴근용 자가용이며 신혼초 아내와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시내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고 우리 부부의 애마였다.
나와 가까운 지인이 시내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해 꽃 피는 봄날 나는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나 지인의 사업장소 근처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날이 많이 저물어서 아내가 있는 오지 벽촌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인은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술 한잔 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하는 수 없이 친구와 포장마차 술값을 계산하고 주차해 놓은 픽업 자동차로 와서 차 문을 열려고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찾아보니 키가 없었다.
아! 이런 낭패가 있나?
밤은 깊어 가는데 자동차 키를 차에 꽂아 놓고 자동차 문을 닫아버렸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지인에게 전화를 다시 걸 수도 있지만 나는 걸지 않았다.
밤이 깊어 열쇠가게도 없고. 주위를 살펴보니 커다란 돌멩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큰 돌멩이를 움켜쥐고 운전석 옆 유리창을 힘차게 내리쳤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자동차 유리문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자동차 키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목적지를 향해서 차를 몰았다. 목적지의 중간쯤에 왔을 때, 얼굴과 손과 코끝이 꽁꽁 얼어붙어 감각이 없었다. 도로 노견에 자동차를 정차하고 히터를 틀어서 손을 녹였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길가 하우스 옆에 하얀 비닐조각이 팔랑거렸다. 문득 저 비닐로 자동차 문풍지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즉통이라고 했던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궁하면 통한다고 했지.
나는 하우스 옆에 있는 비닐 조각을 뜯어서 자동차 문에 끼우고 자동차 문을 닫으니 옆으로 조금 삐쳐 나온 비닐 조각이 있었지만 멋진 비닐 창문이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자동차 비닐 창문이 있었던가? 차 안은 안방과도 같이 따뜻하고 온온하였다. 20km 남은 길을 달려오는 동안에 창밖의 문풍지는 “팔랑팔랑” “펄럭펄럭” 나부끼며 응원을 하고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그 날 새벽 비닐 문풍지가 깃발을 나부끼며 나를 응원해 주어서 귀가하는 운전 길이 결코 외롭지 않았다.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내 몸을 따뜻하게 보호해 준 비닐 창문과 문풍지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나오지 않은 지인보다 훨씬 더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