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태 영 경희대 명예교수 |
ⓒ 성주신문 |
허영호, 1982년 히말라야 마칼루(8,481m)를 시작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모두 정복하고, 남북극점 도보 탐험은 물론 6대주 최고봉 등정이라는 인류 최초의 탐험가로 유명한 그는 항상 자신만만하게 산에 오르면서 자기는 어떤 산이라도 오를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사람이 겸손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 히말라야 산을 등반하게 되었을 때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일기에 대해서도 철저히 점검하고 등산을 시작했는데 얼마 안 되어서 갑자기 기상에 이변이 생겼다. 돌풍에 휘말려 그만 굴러 떨어지게 되었다. 눈 속에서 굴러 내리다가 딱 멈췄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바로 밑이 깎아진 듯한 낭떠러지였다.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올라갈 길이 까마득한데 올라갈 방도가 없었다. 또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저쪽에 밧줄이 두 개 늘어져 있었다. "아, 누군가 여기에 밧줄을 매어 놓았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밧줄을 잡으려면 몸을 날려서 뛰어 가지고 그것을 잡아야 할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두 개의 밧줄 중에서 어느 것을 잡아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어느 밧줄이 더 안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어느 밧줄이나 잡았다가 그것이 위쪽에 단단히 매여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는 판인데, 갈등이 생겼다. 그러나 이대로 있어도 죽고, 밧줄을 잘못 잡아도 죽을 판이라, 할 수 없이 오른쪽 밧줄을 택해서 몸을 날렸다. 그 밧줄이 한참 흘러내리다가 딱 멈췄다. 얼마나 기뻤던지 그냥 그 밧줄을 붙잡고 올라갈 생각도 못하고 막 감동에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밧줄을 타고 올라가 보니까 왼쪽에 늘어져 있던 밧줄은 윗부분이 시원찮게 매여 있는 것을 알았다.
이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그가 깨달은 것은 자기가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하고 모든 것을 갖추어서 나간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내 손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 생명 이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내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연과 사람 앞에 겸손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승진(53) 선장이 2014년 5월 16일 '3무(無)'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하고 무사히 귀항했다. 바람의 힘만으로 (無動力), 아무런 외부 지원 없이(無援助), 항구에 정박하지 않은 채(無寄港) 요트를 몰며 200일 넘게 4만1,900km를 항해했다. 세계에서 6번째로 통쾌한 기록을 올렸다. 언론과 가진 귀항 인터뷰에서 한 말 가운데 우리의 귀를 긴장하게 하는 한마디가 "앞으로 겸손해져야겠다"이다. 허영호 탐험가의 고백을 다시 듣는 것 같다.
짐작컨대 김승진 선장은 망망대해에서 고작 43피트(약13m)짜리 요트 안에서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존재를 실감하면서 '겸손'을 되새겼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항해 중에 거대한 파도에 부딪쳐 요트가 두 번이나 뒤집혔고, 바람이 일지 않아 13시간 동안 꼼짝없이 바다 한가운데 동동 떠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국내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전 회장이 소속 연예인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었다. "겸손해라!" 쏟아지는 박수에 우쭐하다가 '한 방에 훅 가는' 스타들이 얼마나 많은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자기 작품에 결코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 그 연유는 이렇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성화를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일생일대의 걸작을 그 곳에 남기면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로부터 '미켈란젤로, 위대한 미술의 거장'이란 찬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작품에 몰두했다.
마침내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를 완성했다. 거기에 자기 이름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라고 서명을 했다.
그리고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하늘로부터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빛과 푸른 대자연을 보았을 때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때 번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어떤 화가도,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려낼 수 없는 그 아름다운 대자연,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 그런데 그 어느 하나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된 서명이 없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당장 성당 안으로 들어가 그림에 서명한 자기 이름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는 자기 작품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고 겸손하면 명예를 얻는다."(잠언 29:23)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베드로전서 5:6) 강물이 모든 골짜기의 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낮고 낮은 곳으로 흘러 강으로, 호수로, 바다로 가지만 결국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겸손하라.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