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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자마당

가을에 온 편지 - 김성락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4.11.26 09:33 수정 2024.11.26 09:33

↑↑ 김 성 락 소설가
ⓒ 성주신문

 

그이가 세상을 떠난 날도 가을이었다.

가을을 너무 좋아했기에 이렇게 유별나게 청명한 가을을 여기 내 곁에 그대로 남겨 두고 떠났고, 그렇게 좋아하던 아름답게 핀 코스모스도 다독다독 손보아 그냥 두고 먼 길을 떠난 것 같다.

습기 많고 무더운 여름바람이 싫어서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시원하고 상쾌한 가을바람과 함께 기분 좋은 여행길에 나선 것 같구나.

더욱 가을 오솔길의 낙엽을 밟으며 산책하기를 좋아한 그는 가을에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는 가을바람의 신비함을 찾아보고 싶어 하였다.

그는 그렇게 좋아하는 가을과 늘 함께 있기를 소원하였고, 이 같은 가을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슬며시 와서 잠시 있다 슬며시 가버리는 것을 늘 아쉬워하였다.

그 아쉬움을 기어코 참지 못하고 가을과 헤어짐이 없이 끝없이 같이 있고 싶어 가을이 머무는 그 곳으로 아예 이사를 갔는가 싶다.

그가 떠난 그해 가을은 다른 해와는 달리 유난히도 맑았고, 하늘은 더 높고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그는 푸른 하늘을 독수리처럼 높이 날아다니며 가을바람과 함께 세상천지를 자유로이 다니고 싶어 하였다.

인간세상의 소란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시기, 원망, 욕심, 미움이 없을 그 높고 푸른 가을을 좋아했다. 그 높은 가을 하늘에는 더러움이 없이 투명하며 신선한 맑음만 있다고 믿고 있기에 그기를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그이가 떠난 후 그이와 같이 즐겨 산책했던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달랬다.

그 길옆 의자가 나를 반겨 주기에 무심히 지나칠 수 없어 잠시 앉았다. 그 의자에는 아직 그와 나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 했다.

의자에 앉은 나는 그가 그렇게도 좋아한 가을하늘이기에, 그가 가서 있을 높고 푸른 하늘을 유심히 올려다 보았다.

그 하늘에 그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이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내 마음을 그가 알고 하늘 어디엔가 그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이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나타날 것이라는 신념을 버릴 수 없었다. 지금 내 생각과 행동이 허망일지 모르지만 그이와 나 사이에 오갔던 사랑의 증표로 그이의 모습이 꼭 선명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믿음이 왔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한 번 눈을 껌벅이고 정신을 집중하는 그 순간이었다.

하늘 저 먼 높은 끝자락쯤에서 아주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점이기에 신기하였고 뭔 징후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바람도 없었고 주위가 조용하여 없었던 물건이 날아들 수는 전연 없었다.

뜻밖의 일이라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유심히 보고 있었다. 팔랑팔랑 움직이는 모습이 점점 커져 보였다. 내 곁으로 날아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형체는 뭔지 분간 할 수 없었다.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저게 뭔 일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계속 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 머리 위 50미터 쯤 날아 왔을 때 나뭇잎 같이 보였다. 그러나 뭔 나뭇잎인지 확실히 분간할 수 없었다.

점점 가까이 내려와 내 무릎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잘 생긴 플라타너스 잎이었다.
 

지금도 바람은 불지 않았고 주위에 플라타너스 나무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플라타너스 잎이 날아와 하필이면 내 무릎 위에 내려앉은 것이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고 그이의 뜻에 따라 일어난 사실이라는 느낌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다면 그 플라타너스 잎에 그이의 마음을 담아 나에게 보낸 편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플라타너스 잎을 찬찬이 훑어보았다. 그이가 내게 쓴 글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 즐겁게 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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