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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보 용 시인 |
ⓒ 성주신문 |
엉금엉금 기던 그 시절,
세상은 높고, 나는 작았다
무릎으로 세상을 밀어내며
한 뼘씩 전진하던 나날들
걷는 걸 배웠고,
넘어지며 울기도 했지만
두 다리로 중심을 잡는 기적
그리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먼저였던가
숨이 먼저였던가
심장이 뛰고
세상도 함께 뛰었다
진시몬은 말했지
나이 든다는 게 억울하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나이에도 달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무릎은 여전히 내 편이고
숨은 아직도 내 안에 있고
삶은 고개 숙인 벼처럼
익어가며 고요해졌다
헛발 디딜 일도
헛된 꿈도 줄어들었고
이제는 안다
달린다는 건
앞만 보는 게 아니라
삶을 통째로 껴안는 일이라는 걸
황혼이 오면
나는 멈추지 않으리
더 천천히, 더 깊이
노을 속으로 달려가리
그날
붉은 하늘이 내 등에 손 얹으며
"참 잘 달렸구나"
말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