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인간의 종교가 생겼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일단 수긍할 수밖에 없다. 산도, 바다도, 땅도, 물 도 모두가 경이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달리고 소리지르는 짐승들은 또 얼 마나 무섭게 느껴졌겠는가. 사냥으로 동물들을 잡아먹게 되기 전까지는 조 상들이 수도 없이 맹수들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천재지변이라는 것이 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화산이 터지고, 땅이 꺼지고, 홍수가 나고, 폭 설이 내리고, 파도가 산이 되어 밀어닥치는 두려움 속에서 인간이란 매우 무기력한 존재임을 깨닫고 해를 향해, 달을 향해, 별들을 향해 살려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산에는 산신령이 있고, 물에는 물귀신이 있다는 두려운 생 각도 떨쳐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원시적인 살림이었다 해도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게 마련인데, 동물의 세계를 봐도 그 관계는 매우 끈끈한 것이어서 짐승도 새끼들을 먹 여살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그 정성이 더하지 않겠는가. 요새는 세태가 어지럽고 살기가 힘이 들어 갓난아기를 적당한 장소에 내다버리는 젊은 여자들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비정의 엄마 가 10만명에 1명이나 되었겠는가. 정이 두터우면 두터운만큼 이별은 서럽 고 죽음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겠는가. 불의의 사고로 아들 딸을 잃거나 늙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그 슬픔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었겠는 가.
종교가 두려움 때문에 생겼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물론 점성술이 없었으면 천문학도 없었을 것이고, 천문학이 없었으면 오 늘의 과학도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니 원시적 종교를 나무랄 수만도 없는 일이지만 문명한 나라일수록 종교가 무속이나 무술을 떠나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되기는 힘든다. 문자 그대로 종교란 '큰 가르침'이어서 어떻게 사 는 것이 옳게 사는 것인가를 신도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옳게 사는 힘을 공급하지 못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미신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는 유교나 불교 같은 훌륭한 종교가 이미 천수 백년전에 전해져 역사에 남을만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유교가 아니 었다면 왕인, 설총, 최치원이 이 나라 역사에 등장하였겠는가. 이색, 정몽 주는 누구의 제자였는가. 사서삼경이 없었다면 이황, 이이가 탄생하였겠는 가. 이 땅의 불교를 생각해 보라. 이차돈의 순교의 피는 원효를 낳고, 의 상을 낳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짧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아직 그런 역사적 인물들을 길러내지는 못하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유교와 불교를 타락시킨 무속적 신앙이 이미 예수 교를 망친 것일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우리들에게는 고귀한 정신은 무시하고 부패 한 물질에만 눈이 어두운 사이비 목자들이 들끓고 있다.
빌면 복을 받는다든지, 헌금을 많이 바치면 병도 낫고 사업도 잘되고 아 이들의 대학입시도 뜻대로 된다며 어리석은 신도들을 속여 돈만 뜯는 흉악 한 교회지도자들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가 엄청난 시련에 직면한 것이 아닌 가. '수능시험 1점 올리기 위한 기도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점수를 올리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기도한다 해서 점수 가 올라가는가. 기도한다고 돈뭉치가 굴러들어오는가.
병 나면 먼저 병원에 가서 의사를 볼 일이고,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으 면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지, 빌어서 받을 수 있는 복은 없 다. 오직 희생으로 얻어지는 축복이 있을 뿐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받 을 각오도 없으면서 의인이 되겠다는 것은 주제넘은 생각이요, 다만 미신 일 뿐이다.
종교와 미신은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