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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태 영 경희대 명예교수 |
ⓒ 성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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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주위 사람들의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세상을 떠난다. 영국의 시인 프렌시스 톰슨은 "이 세상에 고통이라고 하는 것에는 아무 시작도 없고 아무런 끝도 없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이의 고통 속에서 났고 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인생의 길은 괴로움의 길이요 고해(苦海)라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이체는 인생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에 있다. 앞에는 언덕이 있고, 내가 있고, 진흙도 있다. 걷기 좋은 반반한 길만은 아니다. 먼 곳으로 향해 가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고난 속에 오히려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 것인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중세 독일의 서사시인 에센 바흐는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인생의 괴로움은 어느 특정인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스승으로 찾아오는 보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간혹 "저 사람에게는 나 같은 고민은 없겠지"라고 생각되는 사람일지라도 인생의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혹은 "아, 그때가 참 좋았는데"라고 종종 말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때도 역시 괴로웠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누구나 그리고 어느 때나 괴로움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같다. 성경에서도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4)라고 했다. 그리고 솔로몬은 전도서(8:14)에서 "형통한 날에는 즐거워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한다.
곤고한 날에는 그 원인을 깊이 생각해 보고 반성하라는 것이다. 다윗은 곤고한 날에 그 원인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반성의 눈물로 이불을 적시며 노래했다.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나의 죄를 사하소서."(시편25:18)
대구 남산교회 김 모 장로는 교회 종을 치는 사찰 집사로서 장로 안수를 받은 분인데, 장로
가 된 후에도 종치는 일을 계속했다. 장남은 변호사, 차남은 의사, 삼남은 대학 교수였는데, 그의 유언 같은 부탁 가운데 하나가 "교통사고로 죽지 말고 암으로 죽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곤고한 순간에 반성하고 회개하는 여유를 갖도록 갑자기 죽지 않고 암에 걸려 죽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는 것은 곧 새로운 결심을 촉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모세는 이집트 궁전에서 왕자로 있을 때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동으로 종과 같이 살던 곤고한 날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킬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존 D. 록펠러는 20대에 자립하기 시작해서, 100만 달러를 모았고, 31세 때는 세계 최대의 독점 사업, 스탠다드 석유회사를 세웠다. 40대에는 철도회사, 금융회사, 부동산회사를 설립하여 세계 최대의 재벌이 되었다. 그러나 53세에 그는 고민의 포로가 되었다. 번민과 고도의 긴장생활이 그의 건강을 해쳐 세계 제일의 부자였지만 극빈자도 입에 댈 것 같지 않은 음식을 섭취해야만 했다.
그의 수입은 한 주간에 100만 달러가 넘었지만, 그의 1주간의 식비는 2달러도 들지 않는 소량의 산화밀크와 두세 개의 크레커가 의사가 허락한 섭식의 전부였다. 불면증·소화불량·대머리·고민·신체쇠약으로 완전히 폐인이 된 것이다.
그는 23세 때부터 목적을 향해서 매진했고, 무슨 좋은 돈벌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모자를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뛰어다녔지만, 손해를 좀 봤다고 하면 곧 앓아 누웠었다. 그는 악착스럽게 돈을 버는 일에 몰두했다. 그래서 인심을 많이 잃어 서적·신문·잡지가 붓을 모아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강도정책을 비난했다. 사무실에는 증오와 저주에 찬 협박장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일에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발길로 차든 욕을 하든 마음대로 하라지"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그의 내부로부터 그를 덮치는 적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하였다. 번민의 날과 불면의 밤 사이에 록펠러는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남의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을 얼마만큼 벌 수 있나"하는 생각을 버리고, "돈이 인간의 행복에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나"하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막대한 돈을 남에게 주기 시작했다. 역사 이래 록펠러 재단에 비견할 수 있는 자선재단은 없는 것 같다. 겨우 150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앓아 눕던 그가 욕심을 버리고 번민에서 해방되어, 그 곤고한 날에 깊이 반성하며 주는 기쁨으로 살면서 건강도 회복되어 53세에 죽음에 직면했지만 93세까지 살아서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형통한 날에는 즐거워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