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태 영 경희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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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서 이어집니다.) 구모가와 교수는 두 말도 하지 못하고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여 가지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생전 처음으로 성경을 펴 봤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장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처음부터 거짓말이다. 그가 가르치는 지구 생성론으로 볼 때 얼토당토않는 말이다. 뭐?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2장 7절) 진화론과는 너무 거리가 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성경을 마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나 적과 싸워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다시 성경을 집어 들었다. 창세기 19장 롯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고는 교대로 아버지와 동침해서 각각 아들을 낳는 대목에 와서 또 성경을 집어 던졌다. 성경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판명되었지만 그래도 한 종교의 경전이라면 인륜과 도덕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구약성경은 그렇다 치고, 신약성서나 한번 읽어 보자 하고 4복음서를 읽어 내려갔다. 누가복음 23장을 읽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구절을 보고 예수라는 분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한 번도 민중에게 해를 끼친 일이 없고 모두 그들에게 좋은 일만 베풀었다.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장애인들을 온전하게하고, 죽은 자를 살려 주고, 배고픈 자들을 먹여 주면서 그렇게도 사랑했는데, 배은망덕하게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십자가에 달려서 기도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수라는 사람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누가복음 23장을 다시 읽었다. 읽고 또 읽다가 그만 지쳐서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누가복음 23장의 한 장면이 재현되었다.
군중이 모여서 빌라도 총독에게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구모가와 교수는 격분했다. "저런 배은망덕하는 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어! 어떻게 생겨먹은 놈들인가 어디 그 꼬락서니나 한번 보자"하면서 그 소리지르고 있는 군중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그 군중 속에 구모가와 교수 자신이 끼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는 그는 크게 소리쳤다. "아니야! 나는 아니야!"
자기 고함 소리에 꿈을 깼다. 자신도 모르게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눈물이 절로 나왔다.
이튿날 총장을 찾아갔다. 총장이 물었다. "성경을 읽어 보았나?" "예 읽어 보았습니다." "그래, 성경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나?" "제가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죄인임을 발견했습니다."
구모가와 교수는 그 후 야나이하라 총장의 추천으로 미국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모교에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열심히 봉사했다. (한국에도 두어 번 다녀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돈에 눈멀고 이기주의의 노예가 되어 그렇게도 신임해 주었던 스승을 배반하고 원수에게 팔아 넘긴 현대판 가룟 유다이다.
나는 누구인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상실하고, 율법의 형식은 열심히 지키면서 그 중심 사상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기득권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참 메시야를 거부한 유대 지도자들이 바로 오늘의 나이다.
나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군중의 소동과 그에 대한 문책이 두려워서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한 비겁한 빌라도의 모습이 바로 오늘의 나의 모습이다.
나는 누구인가? 권력자의 선동에 쉽게 넘어가서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지르며 시위했던 배은망덕한 군중이 바로 나이다.
나는 누구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그 대신 풀려난 억수로 재수 좋은 사나이 살인강도 바라바이다.
예수님은 누가 죽였는가?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 내 죄가 가시가 되고 채찍이 되고 못이 되어 예수님을 피흘려 죽으시게 했다. (사순절 고난주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