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사설 독자마당

소설 조덕환의 길 - 제1부 일본에서의 생활 (12) - 귀 환

성주신문 기자 입력 2025.08.05 10:05 수정 2025.08.05 10:05

↑↑ 조 희 국 대구경북서예협회 사무국장
ⓒ 성주신문

 

추석이 다가오던 어느 날, 봉환과 덕환은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갈 수속을 밟았다. 일본에서의 지난 시간은 한편으론 생존의 몸부림이었고, 또 한편으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된 여정이었다. 두 사람은 고향에 갈 선물을 하나하나 고르며 설렘과 긴장이 교차했다.

부모님을 위해선 고운 옷과 술, 형수를 위해 화장품과 고급스러운 의복을, 어린 만준이를 위해선 반짝이는 장난감과 옷을 골랐다. "고향엔 이런 게 없으니 얼마나 기뻐하실까." 덕환의 말에 봉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묵직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탄광에서 탈출했던 일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 떠나는 길
오사카항을 떠난 배는 물살을 가르며 부산항에 닿았다. 그들은 다시 열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긴 여정을 이어갔다. 성주군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가슴은 빠르게 뛰었다. 덕환은 눈을 감고 고향 마을의 풍경을 떠올렸다. 그곳의 들판, 후리실 마을의 흙냄새, 그리고 부모님의 주름진 손길이 떠올라 코끝이 찡했다.

저녁늦게 도착한 마을은 추석 준비로 분주했다. 마을 곳곳에선 떡을 찧는 소리, 전을 부치는 냄새, 그리고 술 냄새가 어우러졌다. 두 형제가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 고요하던 마을은 금세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만준 애비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집 안팎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부모님은 맨발로 마당까지 달려 나왔고, 두 형제를 와락 끌어안았다. "정말 너희냐? 꿈이 아니냐?" 어머니의 떨리는 손길에 덕환은 눈물을 삼키며 겨우 대답했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돌아왔습니다."

마당은 금세 동네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웃과 친척들이 귀국을 축하하며 서로 얼싸안고 웃음을 나눴다. 하지만 그 웃음 사이로 흐르는 눈물도 있었다. 특히 봉환형의 형수는 뒤돌아 눈물을 훔쳤고, 어린 만준이는 낯선 아버지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 추석날 아침
차례상 위엔 정성스레 준비된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조부모님의 위패 앞에서 숙부님과 형제들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았다. 차례를 마친 뒤, 식구들은 봉환과 덕환을 둘러싸고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봉환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사카에서 회사도 다니고, 적응도 잘했어요." 하지만 탄광에서의 고난과 탈출의 이야기는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후엔 큰누님 부부도 달려왔다. "동생들이 돌아왔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누님의 얼굴엔 오랜 그리움이 서려 있었다. 두 형제는 고향의 친구들과도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되찾았다.

· 작별의 날
사흘은 금세 지나갔다. 떠나는 아침, 두 형제는 준비해온 선물외에 약간의 돈을 나눠주며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봉환은 부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이 돈으로 만준이를 잘 키워주시오. 다음엔 꼭 함께 살 수 있도록 하겠소." 형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마을 어귀에서 두 형제는 뒤돌아서는 가족들에게 몇 번이고 손을 흔들었다. "자주 올게요." 덕환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마을을 떠나는 길,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고향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다음엔 더 오래 머물 수 있겠지?" 덕환이 나직이 말하자, 봉환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야지."

하지만 두 형제는 알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기까지, 그들 앞에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바쁜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마을은 점점 작아져갔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고향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작별의 말이 맴돌았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게요, 우리 고향."



저작권자 성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